고백하자면 나는 살면서 자기계발류 책을 읽은 경험이 딱 한 번 뿐이다.
한 15년 전 쯤 광적인 인기를 끌었던 <더 시크릿>이 그것인데, 사실 이것조차 주위에서 너무 많이 언급되는 탓에 잠깐 호기심이 동해 들춰봤을 뿐 딱히 내가 필요해서 선택한 책은 아니었다. 오만할 정도로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모든 것을 얕잡아 보던 나는 이런 류의 문학이 내 삶을 변화시킬 중요한 무언가를 제시할 턱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더 시크릿>은 내용도 비체계적이고 무용한 근거들의 나열 수준으로 그저 노오력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흔해 빠진 동기부여용 책이었다. 그 뒤로도 몇몇 제목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노력하라' 는 뻔하고 단순한 진리로 돈 좀 만져보려는 상업 작가들의 저열한 의도가 아닐까 하는 내 선입견 탓에 단 한 번도 그런 책들을 펼쳐 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나와 아주 사고 방식이 비슷한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줬다. 평소엔 한 귀로 흘러 들었을테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그 친구의 생활 패턴과 사고 방식이 너무 확연하게 달라져서 이 책의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하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릿(Grit)은 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 같은 단어들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책의 저자인 앤젤라 더크워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에게 '네가 천재는 아니잖니?' 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에서 '천재들에게 주는 상' (genius grant) 이라 불리우는 '맥아더 펠로' 상을 수상하기까지의 경험을 짧게 소개한다. 그리고 세상이 일컫는 '천재' 란 무엇인지, 왜 많은 사람들이 재능에 현혹되는 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서두를 연다.
이어 재능, 잠재력, 노력, 성취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들을 구체화하고 왜 자신이 그릿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어째서 우리의 삶에 그릿이 필요한지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을 다 읽은 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완전히 감화되었다.
이 책은 레퍼런스가 정말 많다. 책의 80% 이상은 저명한 인사들의 개인 사례, 그들의 발언 인용, 수많은 실험 데이터로 구성 되어있고, 20% 정도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그릿 이론이 제시 되어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쓸데없이 분량만 많은, 의미없이 동어 반복하는 인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된 실험을 통한 '실천적 검증' 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모든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릿을 측정하는 방법,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한 이유, 목표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 그릿을 기르는 방법, 열정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 직업과 천직, 희망과 낙관, 그릿을 통한 육아 등.
챕터마다 소개된 다양한 이론이 수많은 자료 수집을 근거로 탄탄히 정립되어 있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을 상상해보면 '<그릿>은 그릿으로 만들어진 책이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그 끈기와 의지가 책 곳곳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녀처럼 내 시간과 에너지를 한 곳에 모두 집중하여 성취해낸 경험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스스로 자문한 순간 내 삶이 많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감화된 것은 결국 '노력이 재능보다 2배 중요하다' 같은 단순한 진리가 아니라 이 책을 집필한 그녀의 삶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도 무작정 이 책의 이론을 내 삶에 시도해보려 한다.
궁극적 목표 설정부터 시작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들,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 나를 통제하는 무의식적 습관,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동력, 우울에 빠졌을 때 나를 구해줄 인지행동치료.
그녀의 가르침대로 겸허하게, 꾸준히 시행해보려 한다. 습관처럼 밀려오는 의심과 권태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그릿으로 채울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들 발췌
- "내가 소설 쓰는 것에 자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원고를 계속 검토할 지구력 하나는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 존 어빙 (난독증을 이겨낸 최고의 작가)
- 많은 이들이 시작했던 일을 너무 빨리, 너무 자주 그만두는 듯하다. 어느 날 하루 기울이는 노력보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눈을 뜨면 기꺼이 러닝 머신 위에 올라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 관심사는 자기 성찰을 통해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흥미가 생긴다.
- "모든 일을 시작할 때 매일 새로 결정해야 하는 사람보다 가련한 인간은 없다" - 윌리엄 제임스 (미국 철학자)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을 추구하는 두 가지 길. 에우다이모니아와 헤도닉
- 천직은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완성품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동적인 것. 자신이 하는 일이 타인이나 사회 전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내가 중시하는 가치를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 희망을 품어라,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결심' 을 가져라.
-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 에서 벗어나라.
- 실패해도 낙담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낙담해도 오래 주저 앉아있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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