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카니
각본 : 존 카니
주연 : 글랜 한사드, 마르케타 이글로바
등급 :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 86분
장르 : 드라마, 음악, 로맨스
평소 즐겨보던 이동진님의 파이아키아 유튜브 채널에 내가 좋아하는 침펄 조합이 출연한 영상을 봤다. 중간에 짤막하게 각자의 인생 영화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주펄님이 인생 영화로 <Once>를 꼽았다. 역시 영잘알 주펄님.
이어서 이동진 평론가는 <Once>에 대해 '음악과 영화가 서로를 장악하려 하지 않고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작품' 이라 덧붙였는데, 이 작품에 더없이 정확한 평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개봉 공식 포스터에도 기재된 한줄평도 마찬가지이고.
2007년에 <Once>를 만나고 한동안은 그 OST 에 빠져 살만큼 좋았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그 당시 느꼈던 아련하고 감성적인 감상을 되새길 겸 이 영화가 유난히 좋았던 점을 몇 자 적어봅니다.
가장 평범하고 사실적인 이야기
우리가 주로 접하는 뮤지컬 영화의 특징적 요소로 화려한 스타 배우진, 다채로운 미술과 의상, 현란한 연출 등이 있습니다.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같은 영화를 예로 들 수 있죠.
뮤지컬 영화는 전통적으로 브로드웨이 식 프로덕션을 표방합니다.
서사는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감정의 고조가 확연히 드러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배우들의 안무와 연기는 희망 찬 씬에서는 최대한 화려하고 현란하게, 암울한 씬에서는 더 없이 황량하고 우울하게 표현됩니다. 특히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클라이막스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죠. 이 모든 것은 뮤지컬 영화가 보다 더 극적인 연출을 지향하고자 하는 점에 있습니다.
물론 스크린에 펼쳐지는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엔 충분하지만, 현실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므로 상영관을 떠나 일상으로 복귀할 때는 허탈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화려함에 지쳐 피로감이 몰려올 때도 있죠. 때때로 극의 대표적인 뮤지컬 넘버 씬과 다른 부분의 씬들이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질적으로 차이나 보일 때도 있고, 장대한 원작 스토리를 최대한 담아내려다 개연성이 뭉개지는 등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으로는 스크린 속 익숙한 스타 배우들의 보컬은 라이브 공연이나 현직 가수들에 비해 그 위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원스> 는 그런 점에서 아주 다른 영화입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저예산(한화기준 약 1억 4천만원)으로 제작된 영화이기에 위와 같은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 불리한 여건 속에서 자신만의 장점을 뚜렷이 합니다.
전통적인 뮤지컬 영화들이 정교하고 현란한 시각적 체험, 극적인 연출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원스> 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한 공감대 형성과 감성적인 퍼포먼스로 관객의 마음에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스며듭니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는 연기 경력이 거의 없는 음악가 출신이며, 극 중에서 어떤 특별한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무언가를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이야기적으로도 어떠한 극적인 갈등이나 위기도 없고, 더욱이 주인공 두 남녀는 '그' 와 '그녀' 로 불리우며 극 중 이름도 부여 받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모두가 '그' 또는 '그녀' 가 될 수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을 '그' 와 '그녀' 로 투영할 수도 있습니다.
<원스>가 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다른 여느 뮤지컬 영화보다도 관객들의 마음 속에 더 깊이 와닿으며 스크린 밖 일상으로 복귀하고도 두고두고 곱씹어 회상할 만큼 진한 여운을 가져다 줍니다.
음악으로 전하는 진심
극의 중심 배경이 되는 공간인 아일랜드 더블린의 일상적인 풍경은 친숙하고 평안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 공간 속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는 서로의 음악적 감정과 생각을 교류하고 협업하며 관계를 쌓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그들의 감정을 직접적인 말이나 행동에 의존하지 않고 대부분 음악으로 대신하여 묘사합니다.
'그' (글랜 한사드)의 알 수 없는 고독과 무언가 응어리진 듯한 감정은 'Say it to me now' 를 통해 표현되고, 'Broken Hearted Hoover Fixer Sucker Guy' 는 그의 지난 사랑에 대한 좌절과 고통이자 동시에 '그녀' 라는 새로운 만남의 기쁨이 됩니다.
'그녀' (마르케타 이글로바) 의 테마로 담긴 두 곡 'If you want me' 와 'The hill' 은 '그' 의 곡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입은 상처와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말로 간단히 정의하거나 타인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감정들이 음악을 통해 '그' 와 '그녀' 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이와 같은 특징은 비단 앞에 언급한 네 곡만이 아니라 영화의 사운드 트랙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주연을 연기한 두 배우가 직접 모든 음악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이야기의 흡인력을 높입니다. 어쩌면 몇몇은 그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노래일 수도 있겠죠. 그로 인해 두 배우의 연기가 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단언하건대 두 배우는 비록 초보에 가까운 연기자들이었지만 그 어떤 명배우도 이 둘을 대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수상하며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Falling Slowly' 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인 'When your mind's made up' 이 연주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로맨틱하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순간입니다.
오래된 악기 가게에서 낡은 기타와 피아노만으로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Falling Slowly' 는 과거에 상처받은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치유하면서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고조시키는 로맨틱한 장면이 되고, 'When your mind's made up' 이 연주되는 장면은 뜨내기 무명 음악가들이 레코드 가게에 모여 가진 재능을 한번에 폭발 시키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특히 'When your mind's made up' 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가사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소극적으로 보일 정도로 담백하고 서툰 둘의 모습을 음악으로 포근히 감싸며 진실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승화시킵니다.
음반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둘은 각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남자는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지만 여자는 전 남편과의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밀쳐냅니다.
남자는 런던으로 떠나기 전 그녀에게 피아노를 선물하고, 영화는 가족으로 복귀한 그녀가 그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이내 평화로운 더블린의 어느 공원으로 시야를 옮기며 끝을 맺습니다.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서 마지막 노래인 'Once' 가 들려옵니다.
그 '한 때' 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녹아 있는 애틋한 추억이자 잊혀지고 좌절됐던 열정과 영감을 되새기는 시간이며 과거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었던 순간으로 소중히 기억될 것입니다. 저 또한 감상한지 1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네요. <원스> 의 OST 는 오래도록 제 플레이리스트에 머물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젠 다들 아시겠지만 '아직 전남편을 사랑하나요?' 라는 그의 질문에 그녀가 답한 '밀루유 떼베' 는 체코어로 '너를 사랑해' 라는 뜻입니다.
한줄평 : 음악으로 전하는 진심
내 별점 : 9 / 10
IMDb : 7.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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