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그림이란 것이 대체 뭐길래.
그리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던 걸까? 라스 폰 트리에는 미치지 않기 위해, 자살하지 않기 위해 영화를 찍었다. 정신 병동을 자주 오가던 그가 <킹덤>, <안티 크라이스트>, <살인마 잭의 집>, <멜랑콜리아> 그리고 이것들 이전에 <백치들>을 찍었던 것은 단순한 창작 욕구 이전의 생존 투쟁이었다. 고흐의 목표는 간단했다. "빈 캔버스보다 자신의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가 더 가치있길 바라는 것" 그것이 그가 원한 전부였다. 조금 더 바란 것이 있다면 그 여분의 가치로 자신의 밥벌이, 재료값 벌이 정도는 할 수 있길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었다. 욕심이라 부르기엔 터무니없이 소박하다. 당대의, 그리고 전대의 위대한 미술가들을 동경하고 본받으면서도 그가 정진하던 방향은 그들의 발자취가 아니라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마치 갓 눈이 내려와 새하얗게 뒤덮인 땅처럼 깨끗한 미지의 대지로 자신만의 끊임없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편지는 짐작컨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중요한 의식이었을테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 그로써 온전히 그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이 있다면, 이 넓은 세상에 그 마음을 알아줄 이가 단 한 명뿐이라도, 그를 위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펜을 들었다. 그의 고독은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담담한 어조로 은근한 동정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털어낸다는 것. 털어놓는다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지 않으면 온갖 부정적인 상념들이 그의 머리를 지배할 테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그의 시간을 따라잡기까지 100여일 정도. 그의 삶의 무게가 나와 같지 않고 나의 사유의 깊이가 그와 비견할 바 못되지만 아무렴 상관없이 그와 내가 부여받은 시간이 일치하는 때가 온다. 그 땐 나도. 나도 무언가 무엇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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