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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5 JIFF

by 손지인 2025. 5. 6.


5월 3일
중리동에서 전야제(?)를 즐기고 일어난 아침.
오랜만에 마신 술기운 덕인지 한바탕 몸을 움직이고 난 탓인지 꿈 한 점 없이 개운한 밤을 보냈다. 익숙치 않은 잠자리가 무안할 정도로 상쾌한 몸과 얕은 비 냄새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민석이의 운전 실력은 두 말할 것 없거니와 음악 취향도 나와 제법 맞는 구석이 많았다. 덕분에 여러 노래를 흥얼거렸다. 선규씨는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어련히 편한 사람이라 신경쓰이지 않았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여러 잡담들, 편의점에서 산 초대형 커피, 때때로 거친 농담, 비오는 풍경.
실내가 근사한 20년식 검은 그랜저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이동했다. 생각나는 음악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삽입되었던 "Come and get your love" 지금 생각해보니 그 순간의 무드와도 잘 맞네? 여행의 시작이었으니.

첫 영화는 구렸다.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롱테이크와 다툼, 그림자는 밀레니엄 맘보를 꼭 닮았다.
GV에서 감독은 이미 전에 찍은 자신의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했다는데, 장편으로 확장될 만한 소재인지 자체가 의문이다. 뭐.. 촬영배경까진 알 수 없으니.
음악 활용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그냥 나왔다.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아, 장래 아들 이름 후보로 정했다던 테츠오도 "철남"의 것인지 궁금했지만. 이젠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군.

극장 앞 할리스에서 진희씨가 합류했다. 무슨 얘기를 했더라?

삼백집이라는 콩나물 국밥 가게를 갔다. 꽤 유명한 모양이다. 맛은 좋았지만 그렇게까지 특별한지는 모르겠군.




거리를 둘러보다가 진희씨가 가고 싶다던 에이커 책방에 갔다. 고즈넉한 풍경 속 곳곳에 놓인 책들이 평화로운 기운을 담고 있다. 쓰지도 않을 엽서 6장을 샀다. 3장에 2천원이니 그렇게 큰 지출은 아니다. 제목이 마음에 드는 작은 책 한 권을 사려다 말았다. 적당히 야하고 솔직한 이야기? 대충 그런 느낌이었는데.

가방이 무거웠다. 오후 박찬욱의 GV에서 싸인 받을 책 두 권(몽타주와 오마주), 그리고 삼각대를 넣어놓은 탓이다. 어깨에 멘 가방 반대편 손에 들린 콩나물(삼백집에서 여행객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줬다)도 거슬렸다.

민석이와 둘이 판소리 카페 행원을 갔다.



너무나 아쉽게도 코로나 이후 판소리 공연은 무기한 중단됐다고 한다. 그래도 100년 가까이 보전된 건물 안에서 마시는 레몬차 맛은 색달랐다. 자그마한 정원을 둘러싼 한옥 마루를 거닐 때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각이 꼭 먼 옛날 금산의 아버지 본가 집을 걷는 것 같아 묘했다.


<파란만장 + 복수는 나의 것>을 보러 갔다.

파란만장은 처음 본 단편이었는데, 어어부 밴드의 오프닝 씬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어쩐지 음산하고 기괴한 기운에 걸맞는 사운드와 퍼포먼스가 기대감을 북돋곤 이어지는 이정현 오광록 배우의 열연 감상에 30분이 훌쩍 지났다. GV를 통해 촬영 비하인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정현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비화는 무척 흥미로웠다. 역시 사람 일이란..
각자의 수많은 선택들이 겹치는 자리에 발생한 일이 우연을 낳고 그 우연은 기대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운동과 결단, 준비와 책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영화가 일반적인 영화와 어떤 차별점이 있느냐 하는 질문에 박 감독님의 대답 또한 인상 깊었다. 각자에 걸맞는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랄까. 미학은 단어 자체가 모호하지만 그 발언의 의도와 방향성은 아주 깊이 이해했다. 35mm 카메라엔 그에 걸맞는 컨텐츠가 필요하지.

<복수는 나의 것>을 잊고 살았다.
내 첫 사랑 같은 영화는 항상 <파이트 클럽>이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 전에 하나가 더 있었다.
소년 시절 나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하드보일드와 블랙코메디를 알게 되었고 <올드보이>보다 훨씬 더 매료되었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한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해준 영화였다. 아주 까마득히 잊고 살았군. 실망하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왠걸,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들어간 영화였다.

싸인은 못 받았다.

민석이, 선규씨와 술자리를 가졌다.
끊이지 않고 채워지는 소주잔처럼 대화 또한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았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 참 즐거운 일이야.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커서 놀랐다.
특히 민석이는 참 여러모로 남자다운 발언을 했다. 내가 사람 하난 기가 막히게 봤군.

잠자리가 사나울까 걱정했는데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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