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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20~

[스포]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2023) 해석 및 감상평 - 외딴 섬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by 손거북이 2023. 3. 17.

 

감독 : 마틴 맥도나

각본 : 마틴 맥도나

주연 : 콜린 패럴, 브렌던 글리슨

등급 : 15세

러닝타임 : 109분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마틴 맥도나 감독의 4번째 장편 영화.

영국의 천재 극작가 마틴 맥도나 감독의 4번째 장편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입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1996년 희곡 <뷰티 퀸>으로 데뷔 후 연극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2005년 단편 영화 <식스 슈터>를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입문합니다. <식스 슈터>는 78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며 그의 존재감을 알렸고, 이후 그의 세 장편 영화 <킬러들의 도시>(2008), <세븐 싸이코패스>(2012), <쓰리 빌보드>(2017) 를 통해 자신의 개성과 철학이 새겨진 작품들을 선보이며 그만의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합니다. 

 

마틴 맥도나 작품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아이러니' 입니다.

그의 작품들 속에는 외골수에 가까울 정도로 신념이 강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인물들은 각자 그들이 맺은 주변인들과의 관계, 그들이 마주한 상황, 불가피해 보이는 선택들이 자아낸 아이러니 속에서 고민에 빠지고 방황하다가 행동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어둡고 무거우며 때때로 잔인하지만 이런 아이러니를 통해 그 순간 순간들을 유머러스 하게 승화시켜 관객을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 - 킬러, 싸이코패스, 유가족 - 속에서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를 다루면서, 현실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일상의 진실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극의 흡인력을 높입니다. 그가 창작한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그의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니셰린의 밴시>를 통해 마틴 맥도나 감독과 3번째 작품을 함께한 배우 콜린 패럴은 다정하고 유약하지만 때때로 냉혹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작중 그의 갈등과 고뇌를 관객과 함께 사유하도록 하는 안내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를테면 감독의 페르소나와 같은 배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3번째 협업을 하게 된 배우 브렌던 글리슨 역시 콜린 패럴과 마찬가지로 마틴 맥도나의 창작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의 강인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는 마틴 맥도나의 인간적이고 섬세한 캐릭터성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극의 흥미를 더해 줍니다.

 

아래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주관적인 해석과 감상평입니다.

 

 


 

'이니셰린의 밴시' 란?

'이니셰린' 은 감독이 창작한 허구의 공간으로 아일랜드의 외딴 섬을 지칭합니다. 시기는 1923년. 바다 건너 아일랜드 본토에서는 내전이 발발하여 '이니셰린' 곳곳에서도 포화 소리가 울리지만 '이니셰린' 의 섬주민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세상 이야기인 듯 권태롭고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기이한 공간입니다.

 

밴시(Banshee)는 아이리시 전설 속 캐릭터 중 하나로 죽음을 예고하며 비명을 지르는 여성을 지칭합니다. 극 중에서는 검은 옷 차림을 한 노파, 맥코믹 부인이 밴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맥코믹 부인이 파우릭(콜린 파렐)에게 예언한 두 개의 죽음은 끝내 실현되며 주인공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이니셰린의 밴시' 란 다른 세상과 격리된 외딴 섬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뜻합니다.

 

 

 

손가락을 자르는 남자

콜름(브렌던 글리슨)은 이니셰린이 주는 권태로움에 우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일은 따분한 오늘과 도무지 다를 것 같지 않고 매일 보는 가장 친한 친구는 멍청하고 소모적인 수다만 늘어놓기 바쁘죠. 나이를 먹고 죽음에 가까워 질수록 친구와 함께 나누던 다정하고 평범한 대화들이 콜름에겐 점점 자신을 좀먹는 독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결국 콜름은 자신의 남은 삶을 창작자로서, 예술가로서 보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가장 방해가 되는 친구인 파우릭에게 절연을 선언하죠. 또한 그에게 자신을 방해할 때마다 자기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보내겠다는 무서운 경고를 합니다. 그것도 바이올린을 켜는 왼쪽 손가락부터 말이죠.

 

마틴 맥도나 특유의 아이러니한 지점입니다. 예술가의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절교인데 완전한 절교를 위해 손가락을 자른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렇게 모순된 콜름의 행동은 브렌던 글리슨이 출연했던 마틴 맥도나의 2008년작 <킬러들의 도시>에서 "자살하면 죽여버리겠다" 는 그의 대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집에 가까운 의지가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다정함이라는 폭력

파우릭은 다정합니다. '이니셰린' 의 주민들 대부분이 멍청하다고 그를 업신여기지만 그는 그들에게 상냥하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충격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콜름의 절연 선언이죠. 착한 심성을 가졌지만 아둔한 그는 친구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에게 다정함과 평화로운 일상은 '좋은 것' 이고 변화가 없는 땅 '이니셰린' 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콜름과 나누는 대화는 그 '좋은 것' 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는 콜름의 무시무시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계속 접근을 시도합니다.

 

맹목적인 선의로 생각한 그의 다정함은 결국 그의 독단이자 친구에게 가하는 폭력이 되었고, 끝내 바이올린을 연주할 콜름의 모든 손가락을 앗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파우릭은 변화를 거부하다가, 슬퍼하다가, 분노하며 서서히 변해갑니다. 콜름에게 폭언을 퍼붓고, 콜름의 새로운 친구에게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면서 그를 떠나게 만들죠.

 

특히 콜름이 자신의 연주곡을 완성한 직후 파우릭이 그를 방문한 것은 둘 사이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콜름은 자신의 곡이 완성된 기념으로 그에게 남은 유일한 친구인 보더 콜리와 춤을 추고 있었는 데, 그 때 파우릭이 그를 방문합니다. 이미 왼손 검지를 잘라 그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고 난 후 였는데도 말이죠.

 

이윽고 콜름의 연주곡에 관한 둘의 짧은 대화가 이어지는데 곡의 제목이 'The Banshees of Inisherin' 입니다. 파우릭이 콜름에게 '이니셰린에는 밴시가 없지 않느냐' 고 묻자 콜름은 그저 sh 발음이 반복되는 것이 좋아서 붙인 제목이라고 답합니다. 또한 밴시가 더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고 고요히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콜름은 화가 났을 겁니다. 자신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할 왼손 검지 손가락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파우릭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죠. 만약 파우릭이 조금이라도 그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더욱이 파우릭은 이제 창작이 끝났으니 우리가 절교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 아니냐, 펍에서 술이나 마시자 며 눈치없이 들 떠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콜름은 그의 분노를 감춘 채 끝까지 침착하게 응대하고는 그를 보냅니다. 마치 위에서 언급한 대로 '밴시가 더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고 고요히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는 자신의 말처럼 말이죠. 이후 콜름은 파우릭에게 자신의 남은 네 손가락을 보냅니다.

 

목적을 떠나 순수하게 자신의 의사를 존중 받길 원했던 콜름과 독단적인 무지함을 다정함이라 착각하고 있던 파우릭.

둘의 관계는 이제 어떠한 실리도 명분도 없이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저 sh 발음이 반복되는 것이 좋아서 붙인 비극적인 제목처럼 말이죠.

 

 

 

 

친구를 잃은 또다른 한사람

도미닉(배리 키오건)은 아버지에게 구타와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 조차 파우릭 이상으로 무시 당해왔죠. 그런 그에게 파우릭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섬 내에서 유일하게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파우릭에게 콜름같은 존재가 도미닉에겐 파우릭이었던 것이죠. 그런 파우릭이 콜름에게 절교를 당하고 악하게 변하자 도미닉은 크게 실망합니다. 

 

유일한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연모하던 시오번에게 거절당하고, 유일한 친구마저 변하자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극 중에선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은 저의 추측입니다) 이것은 밴시가 예언한 두 개의 죽음 중 하나가 됩니다.

 

 

 

 

폐허가 된 집, 우정의 종말

밴시가 예언한 다른 하나의 죽음은 파우릭의 당나귀 '제니' 였습니다.

여동생이 떠나고, 가족 같았던 '제니' 마저 콜름의 손가락으로 인해 잃게 되자 파우릭은 분노에 휩싸여 콜름의 집을 태워버립니다. 이후 파우릭은 해변에서 콜름과 마주합니다. 둘은 며칠 째 잠잠해진 아일랜드 본토를 바라봅니다. 콜름은 '아일랜드 내전이 이제 끝나려는 것 같다' 며 파우릭에게 화해를 청하지만 파우릭은 '이제 시작일 뿐' 이라고 답합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을 응시하는 노파(밴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의 원한이 끝나지 않았음을, 더 많은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왜 시작되었는지, 무엇을 위한 건지 알 수 없으나 계속 진행 중인 아일랜드 내전처럼 말이죠.

 

결국 전쟁은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그와 무관한 주변인과 가족을 죽음에 몰아넣었습니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오랜만에 보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영화인 만큼 큰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이야기 꾼의 유일한 의무는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것" 이라고 말한 그 다운 영화였죠.

 

특히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 출신이었던 부모님을 둔 덕분인지 사실감이 느껴지는 배경 묘사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비례하여 전쟁의 잔혹함이 더욱 깊게 와닿을 수 있었죠. 돌이켜봐도 아일랜드 내전을 두 친구의 절교에 비유한 발상이 정말 기발하고 절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의 초반 흐름이 다소 늘어지고, 전쟁에 대한 비유가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만 그보다 만족감이 더 큰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그의 새로운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지금까지 내전의 잔혹함과 황폐함을 두 친구의 우정에 빗대어 담은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였습니다.

 

 

 

 

한줄평 : 밴시가 당신을 찾기 전에..

 

내 별점 : 8 / 10

IMDb : 7.7 / 10

더 밴시즈 오브 이니셔린 (2022)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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