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찬욱
각본 : 박찬욱, 정서경
주연 : 탕웨이, 박해일
등급 : 15세
러닝타임 : 138분
장르 : 로맨스, 드라마,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이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생긴 나의 궁금증은 아주 엉뚱한 곳에 있었다.
어째서 정안은 과학자여야 했을까.
그리고 마침내! 그 이유는 아마도 과학자와 경찰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의 속성이 동류임에 있지 않을까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학자는 위험 시설을 점검하고 불안 요소를 제거하여 사회 안전을 도모한다. 경찰은 사건을 조사하고 범죄자를 구속하여 시민의 안전을 지켜낸다. 그 과정에는 한치의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 객관적이고 명료한 근거를 필요로 하는데, 아주 작은 실수에도 방사능이 유출되거나 살인자와 같은 강력범을 사회에 방치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의는 '시민의 안전' 이지만 추구하는 공통된 가치는 데이터를 통한 프로세스의 정립과 검증, 즉 어떠한 '명료함' 이다.
1. 정안(이정현)
정안과 해준은 서로의 동류였고 적어도 정안은 완전히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의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신문에 실릴 만큼 저명한 인사/최연소 경감) 그들은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런 성과는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느끼는 자부심 이상으로, 서로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든든한 기둥과도 같지 않았을까. 마치 이상적인 동반자와도 같은 모습일 테니.
하지만 해준의 내면엔 정안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혀 다른 형태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미지의 욕망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여 욕구 불만, 모종의 결핍으로 이어져 불면증을 야기하고 점점 더 심해져 간다. 깨끗한 집안 어느 한구석에 어느 새 피어난 곰팡이처럼.
극이 진행됨으로써 드러나는 그의 욕망은 피와 살이 난자하는 잔혹한 현장을 대면하는 것에 있다. 그로써 미스테리의 진실을 밝혀 성취하거나, 미결로 남아 자신을 고통의 쾌락에 빠뜨려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것은 오프닝에서 해준이 마치 살인이 없어 무료하다는 듯한 말과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한 것 마냥 생기 넘치게 뛰어가던 그의 모습, 그리고 정안의 '당신은 피와 살인 없인 살 수 없다'는 대사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위 언급한 '고통의 쾌락'은 극 중에선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아 짐작할 뿐이지만 해준과 서래의 초기 설정이 마조히스틱/사디스틱한 인물이었음과 극의 결말을 상기해 보면 상당히 그럴듯한 가정으로 보인다. 아마 각본을 대중 친화적으로 수정하면서 없앤 설정이 아닐까.
어쨌거나 해준과 정안의 균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정안은 전술했듯 명료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극 중 언행에서도 끊임없이 데이터 친화적인 사고방식을 내보인다. 부부가 매주 갖는 의무방어전은 그녀에게 단순 감정의 영역 이상으로 이미 이혼율 60% 확률을 가진 그들 부부에게 추가적인 55%의 확률을 더하지 않기 위해(섹스리스) 펼치는 일종의 리스크 관리처럼 보이며 관계 중에도 섹스의 의학적 효능같은 실리적인 부분을 언급한다. 2부에서의 석류와 자라도 같은 맥락.
그녀는 위험 요소를 멀리 하고 통계적으로 검증된 돌다리를 건너는 사람이며, 반대로 해준은 직업적 사명(명분)과 생의 감각(개인적 욕망)을 위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다.
사회적, 대외적으로는 동류지만 안타깝게도 정안은 결코 해준의 결핍을 채워줄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2. 서래(탕웨이)
서래는 어땠을까. 그녀는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해준과 판이하다. 국적이 다르고 성장 배경이 다르며 계급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적 위치가 다르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씀'보다는 사진을 택했고, 참혹한 광경을 함께 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을지로 바다사나이' 해준처럼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했다. 이를테면 내면의 동류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느 사극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비록 그 형식은 사건 수사였으나) 품위있게 다가온 해준은 그녀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이었고, 마찬가지로 서래는 해준의 은밀한 기호에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궁궐 데이트 씬은 마치 두 사람이 다른 시대에서 만나 둘을 방해하는 수많은 현실적 제약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사랑은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일장춘몽처럼 보인다.
서래는 그녀가 국가 유공자의 후손이자, 국토 일부의 주인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자부심이자 어쩌면 유일한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비록 밀항자지만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가도 되는 명분을 주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의 품위를 유지할 유일한 배경일테니 말이다. (간호사와 간병사는 살인 수단으로 오염됐다)
독립군이었던 외조부를 닮은 듯 불행한 환경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던 그녀는 그 가치의 크기를 알기에 자신을 위해 자부심을 버리고 붕괴된 해준을 '재건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부심이자 가장 순수한 공간인 호미산에서, 해준은 알지 못하는 작별의 포옹을 나눈다.
3. 해준(박해일)
해준은 자신의 녹음이 완전히 객관적인 것이라고 믿었으리라. 지금까지 그의 녹음은 온연히 수사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충실하도록 훈련되었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녹음은 어떠한 함의도 가질 필요가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되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서래의 미소를 울음으로 해석) 적어도 그에게 '자신의 목소리'는 철저히 객관적인 기록 그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래의 녹음은 다른 그의 녹음들과는 반대로 가장 진실한 순간이었다. 해준은 서래의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자신의 목소리를 해석함에 있어 '자신이 붕괴되었다' 는 표면적 사실 이상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것이 서래에겐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해준은 마치 형사의 숙명처럼 사후 도착하여 헤매인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녀가 덮은 영원한 안개 속에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단독 장편 연출작(영화+리틀 드러머 걸)이자 정서경 작가와의 5번째 협업 작품.
그리고 나의 11번째 박찬욱 영화다.
박감독님은 봉준호 감독님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두 감독님들 중 하나지만 평단의 높은 명성에 비하면 대중적으로 크게 흥행한 작품은 생각보다 드문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이유는 상업성을 고려하여 구축된 기존의 흥행 공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작가' 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에 걸맞는 창의적이고 특별한 연출을 항상 지향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죽했으면 최대 흥행작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었다는 여담도 있었을까.
2000년대 초반 '복수 3부작'부터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까지 '박찬욱 영화' 에 대한 대중들의 인상은 '어둡고 잔인하고 난해한 영화' 로 깊게 각인되어 버렸는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직접 해명 아닌 해명(?)까지 하시며 관람을 독려하시는 모습이 어쩐지 짠하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이 끝내 200만 관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꽤 아쉽게 느껴졌다. 아,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지 못한 것도. (칸에서의 수상은 축하!!)
<헤어질 결심>은 줄다리기 같은 영화다. 사건의 배후에서 진실을 감추는 여자와 미스터리의 진실을 쫓는 남자. 둘 사이의 은밀한 사랑의 줄다리기는 곧, 마찬가지로 진실을 교묘히 감추고 있는 영화와 진실이 궁금한 관객 사이의 줄다리기가 된다. 굵직한 뼈대는 알프레도 히치콕의 <현기증>(1959) 으로 대표되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필름 느와르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폴 버호벤의 <원초적 본능>(1992) 같은 느낌의 팜므파탈 스릴을 자극하기도 한다.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는 대사와 호미산에서 마치 해준의 목숨을 노리는 듯한 카메라 워킹을 상기해보자) 구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연출과 더불어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좋은 요소가 되겠다.
사랑 영화의 저변이 한 뼘 더 넓어진 것 같다 ㅡ 극장에서 나올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영상 매체가 발명된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랑 영화' 들이 있었을까.
<헤어질 결심>은 다양한 스마트 기기와 녹음기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번역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2020년대만의 독창적인 시대성을 부여했다. 마치 '지금' 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이 점은 먼 훗날 수 많은 사랑 영화들을 회상할 때, 2020년대의 <헤어질 결심> 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2000년 영화 <동감>의 '무전기' 처럼 말이다.
ㅡ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줄 평 : '사랑 영화'의 저변이 한 뼘 더 넓어진 것 같다.
내 별점 : 8 / 10
IMDb : 7.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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