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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20~

[스포]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2022) 감상평 - 후속작을 기대하며

by 손거북이 2023. 3. 6.

 

공식 포스터

감독 : 이노우에 다케히코

등급 : 12세

러닝타임 : 124분

장르 : 애니메이션 

 

작년 9월 경 슬램덩크의 극장판 개봉 소식을 듣고, 또 그 각본과 연출이 무려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 라는 소식을 알게 된 후로 23년 상반기 내 최고의 기대작은 단연 <더 퍼스트 슬램덩크>였다. 나같은 8090년 세대에겐 <드래곤볼>과 더불어 양대 인생만화로 꼽히는 명작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의 인기가 많아봐야 얼마나 될까 싶어 상영 종료 되기 전에 부리나케 찾아봤는데, (1월에만 두 번 봤다)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누적 관객수 384만을 돌파하며 종전 기록인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을 제치고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국내 흥행 1위를 달성했다! 

 

 

출처 나무위키

 

<너의 이름은>의 스코어가 지금보다 상대적 호황이었던 2016년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후 관람료 인상의 여파와 OTT 컨텐츠의 강세에 전반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줄어든 지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 기록은 이례적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평소 영화가 얼마나 흥행하든 '나만 재밌으면 그만' 이라는 주의지만 이 영화는 원작에 대한 애정도가 무척이나 깊어서 '딱 200만 정도만 넘겠음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예상을 훨씬 상회하며 사랑받는 걸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 특히 관객 연령대가 나같은 30,40대 남성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10,20,50대에도 고루 분포되어 있고, 특히 여성 관객의 비중이 남성보다 더 높다는 점(!)에서 슬램덩크가 단발성 향수가 아닌 지속 가능한 IP로 활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더 세컨드 슬램덩크> 도 혹시...? 이화백님 제발.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슬램덩크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관객분들도 많겠지만 아무래도 원작이 너무 유명하다 보니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원작과 비교하며 볼 수밖에 없었는데, 원작의 애독자 입장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감상을 몇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산왕전

 

슬램덩크가 2시간짜리 장편 영화로 스크린에 상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원작 팬들이 가장 바랐던 것은 아마 '제발 산왕전이길' 이지 않았을까. SBS 에서도 방영됐던 TVA 는 지역 예선 이후 전국 대회로 가기 직전 까지만 다루고 있고 90년대에 나온 4편의 극장판은 원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기에 전국 대회인 풍전고교와 산왕고교와의 경기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적이 없다. 특히 북산과 산왕의 경기는 일본 내에서 장르 불문하고 만화 속 역대 최고의 대결에 항상 순위권에 오를 정도로 명승부이자 슬램덩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팬들은 '산왕전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고 생각하며 극장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송태섭의 과거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곧이어 북산과 산왕의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곧이어 일렉 기타 사운드가 깔리며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스케치로 북산의 멤버가 한 명 씩 걸어 나오는 바로 그 오프닝 씬에서 생각했다. '끝났다. 이건 무조건 좋다' 고. 

 

 

 

 

2. 주인공 송태섭

 

원작 슬램덩크에서 북산 멤버 5인방 가운데 송태섭의 비중은 절대적인 분량으로나 서사적으로 가장 적다.

전국 제패는 커녕 지역 예선조차 뚫어본 적 없는 약체 북산고교를 1학년 때부터 홀로 이끌어온 주장 채치수, 도내 중학 MVP 였지만 부상으로 방황하다가 복귀한 정대만, 주인공 천재 강백호, 전국 최고의 고교생을 꿈꾸는 서태웅.

4인 각자가 자신만의 굵직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면 송태섭은 북산 5인방 중 유일한 2학년 캐릭터이면서 1학년 때의 이야기나 농구를 접하게 된 계기, 그만의 목표 따위의 '송태섭만의 것' 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다. 경기에서 조차 그의 캐릭터 설정상 항상 강력한 맞 포지션과 붙다 보니 (김수겸, 이정환, 이명헌 등) 상대방의 강력함을 묘사하기 위해 줄곧 희생되곤 했는데, 그 때문인지 팬들 사이의 인기 또한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 와중에 20년을 넘게 기다려 온 정식 첫 극장판의 주인공으로 송태섭을 선택한 것은 뭐랄까, 굉장히 이노우에 다케히코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주목받지 못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극장판 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만들고 그걸 원작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밀어 붙일 수 있는 작가구나' 싶었다. 

 

 

 

 

3. 성장 영화

 

슬램덩크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성장' 이다.

원작에선 천부적인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재능을 싸움으로만 발휘했던 주인공 강백호가 채소연을 만나면서 농구에 입문하게 된다. 이 후 스포츠를 배우고 룰을 배우고 팀워크를 배우며 '선수 강백호' 뿐 만이 아닌 '인간 강백호' 의 성장 여정을 담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에서는 포커스를 강백호에서 송태섭으로 옮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송태섭에게 친형 송준섭의 존재는 형 그 이상이었다. 집안의 가장이자 한 명의 농구 선수로서 롤 모델이었던 형을 잃은 상실감과 이제부터 그를 대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를 좌절 시키고 방황케 한다. 산왕의 '존 프레스' 전술은 코트 안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그가 유년 시절부터 느껴온 이 압박감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절묘한 각색이다. 결국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아온 드리블로 상대의 전술을 공략해내면서 북산을 구원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옥죄던 압박과 죄책감에서 자신을 해방시킨다.

 

 

 

 

4. 아쉬운 점

 

첫 번째로 명장면, 명대사가 많이 누락된 것. 관람 이 후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본 후기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었던 소감이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사실 원작 산왕전의 매 순간이 명장면과 명대사라고 봐도 좋을 만큼 걸작인지라 모든 장면을 담아 내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겠지만 지금도 머리를 스쳐지나는 굵직한 몇 장면들이 빠진 것은 정말 아쉽다.

추가된 송태섭 이야기를 빼고 산왕전에 충실하는 쪽이 더 낫지 않았겠나 하는 의견도 여럿 봤지만 만약 그랬다면 너무 원작 팬들 만을 위한 팬서비스 무비가 되었을 것 같다. 송태섭 성장 드라마를 추가함으로써 원작과는 별개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만의 독창성을 얻을 수 있었고, 이건 원작을 몰랐던 관객들도 이 영화를 쉽게 유입 시킬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방향성이었다. 이 서사가 빠졌다면 아마 지금 같은 흥행 돌풍은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두 번째는 내러티브의 통일성이 부족했던 것. 산왕전에 송태섭의 성장 드라마를 매치한 시도는 일종의 양날의 검이 되었다. 가장 존재감이 약했던 캐릭터를 재조명하면서 색다른 관점을 부여한 것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원작을 대폭 각색하지 않는 한 결국 이야기의 결말은 주인공 강백호를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반 이후 부터 송태섭은 주변인이 되어버린다. 산왕의 '존 프레스'를 공략하는 시점까지는 송태섭의 무대로 잘 녹여냈지만 결국 대역전의 시작과 끝은 강백호였으니까. 극 초반부터 차곡 차곡 쌓아온 서사가 결말로 갈 수록 마침표를 잃고 흐지부지 되는 느낌이 든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정적의 30초에선 주인공 송태섭 존재감은 없다시피 하다. 물론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결정했을 때부터 예정된 결과일 테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역시 쉽지 않다.

 

세 번째는 송태섭의 미국행 결말. 원작엔 없는 내용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벙 쪘던 부분이다. '엥? 차라리 원작대로 북산의 차기 주장이 되면서 '성장' 이라는 키워드에 방점을 찍는 편이 낫지 않나?' 싶었다. 특히 원작에서나 극 중에서도 정우성과는 특별한 접점이 없었는데 그 둘이 대치하면서 끝난다는 게 영 어색하다. 개인적으로 정우성의 이야기는 완전히 편집하고 북산 선수들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편이 산만한 결말을 정리하는 데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5. <더 세컨드 슬램덩크>가 나온다면?

 

농구에서 송태섭 포지션인 PG(포인트 가드)는 1번이다. 내 바람일 뿐이지만 북산 5인방을 한 명씩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온다면 순서는 다음과 같다.

 

2번 SG(슈팅 가드) 정대만

3번 SF(스몰 포워드) 서태웅

4번 PF(파워 포워드) 강백호

5번 C(센터) 채치수

 

정대만 주연이라면 아마 복귀 후 가장 난적이었던 산양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MVP 급 활약을 한 산왕전을 한 번 더 봐도 좋고. 강백호 시점에서의 능남전도 보고 싶다. 만약 후속편이 제작된다면 아마 능남전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윤대협 같은 인기 캐릭터를 활용하지 않는 건 큰 낭비다.

어쩌면 윤대협이 주인공이 될 수도!? 생각해보니 북산 선수들을 제외하고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은 윤대협 밖에 없는 것 같다. 언제가 됐든 어떤 이야기가 됐든 상관없으니 제발 후속작이 제작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한줄평 : 4편 더 기대해도 됩니까? 이화백님.

 

내 별점 : 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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